2010년 3월 8일 월요일

2084년에는... ...

2084년의 30년 전, 지구의 이상기온과 여러 가지 자연재해로 지구가 어지러웠었고 인류는 이를 새로운 로봇과 여러 기기의 발전으로 이겨냈다. 인류는 이 시기 전에 행동했던 환경을 파괴하는 행동들을 반성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즉, 소설 1984에는 전쟁이 인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2084년에는 자연재해가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또한, 2084년에는 인류들이 이렇게 환경에 신경을 쓰는 사이 인간들은 나약해 지고 있었다. 지식들이 모두 기기에 있었기 때문에 머리를 쓸 필요가 없었고, 힘을 쓰는 일은 전부 로봇이 하였고, 인간이 하는 일은 단지 그 기계가 고장 나지 않았나 하는 것을 보는 일이였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 1984년에는 보이는 계층이 존재 하였다면 2084년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였는데 상위계층들은 고급 정보를 다루는 일들을 하거나 평범한 사람들이 쓰는 기기를 고치거나 계발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정보를 이용해서 평범한 사람들을 조종하거나 선동하는 역할 또한 한다. 즉, 소설 1984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2084에는 그 사실조차 모른 채 사람들이 살아갈 것이다.

자본독재와 전자감시

자본독재와 전자감시

<1984년>은 소련이 해체되기 전, 스탈린 체제의 소련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소설이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20세기를 풍미했던 공산주의 체제는 사실상 붕괴되었다.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에 맞서 승리를 거두웠다. <2084년>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일어나는 개인에 대한 감시와 독재에 대한 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84년, 세계는 같은 공용어와 화폐를 쓰는 거대한 연방국가가 통치하고 있다. 이 사회의 국민 각각은 사회등록번호와 유전자 정보가 담겨있고 신분증 역할을 하는 하나의 모바일 폰을 할당받는다. 국가기관은 국민 하나하나의 위치와 통화내역을 감시할 수 있다. 이 사회에선 개인의 정치적 발언에 의해 비밀경찰에 끌려가거나 어느날 증발하는 일은 없다. 다만 일자리를 잃고 사회적 공공재(치안, 의료, 통신 등)을 이용할 권한을 박탈당할 뿐이다. 이 사회에서 노동자나 신체기관, 혹은 투표권까지 모든 물건은 거래가 가능하다. 사회는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의회는 투표권을 다량으로 사들인 소수의 부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의 활동은 제한된다. 현금이 폐지되고 모든 수입과 지출, 거래는 기록에 남는다.

이 사회에서 개인의 사적 활동은 전자기기에 의해 심하게 감시당하고 있다. 개인의 모든 거래내역과 위치, 통화내역은 물론, 패킷감청을 통해 인터넷 사용까지 감시받는다. 모든 종류의 사회활동에서 신분증명을 의해 항상 13자리의 사회등록번호를 요구받는다. 특히, 전과자에게 전자발찌 착용을 의무화하여 그들의 위치와 대화 등을 국가기관에서 상시 확인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신분조회가 불가능한 사람은 외딴 수용소에 무기한 감금해 심문한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은 현대에 들어서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텍스트로 읽히기도 하지만, 오웰은 죽을 때까지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규정했다. 하지만 전체주의에 대해 생리적 혐오감을 가지고 있던 그는 파시즘을 비판하며 민주적 사회주의를 주창했다. <1984년>의 주인공은 결국 전체주의적 사회에 굴복하고 소설은 비관적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일기를 통해 오세아니아 사회를 고발하던 윈스턴은(그리고 오웰은) <2084년>에는 더 나은 사회가 도래하기를 꿈꾸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2084년>을 평범한 사람, 프롤들의 승리로 끝맺고 싶다. <정구영>

감시가 완전한 자유를 낳고, 정보기술이 인간에게 무한한 능력을 제공한다


2084년 세상 모든 곳이 다 보인다.
개인주택은 그저 편의시설일 뿐이고, 거리는 그저 교통상의 차이밖에 없을 뿐이다.
그렇기때문에 각자 개인의 집을 아예 다 열어놓고 산다.(어짜피 다 보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생활이란 없다. 모든것이 다 이웃과 세계인들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옛기록에 따르면 감시기술로 인해 사생활 침해가 온다니 말이 많았고, 심지어는 빅브라더의 시대가 온다라면서 온갖 사람들을 선동하면서 투쟁했던 학자도 있었다지만, 전부 다 쓸데없는 투쟁이었을 뿐이다. (필자: 빅브라더를 우려하던 학자 어르신께 정말 미안하군요.^^)

이미 사람들은 개인주의가 뭔지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공동체주의가 발달하였고, 이러한 세상이기에, 사람들의 보편적인 사회적인식에 따라서, "사생활"이라는 단어는 아무의미없는 단어일 뿐이었다.

세상 모든 곳이 다 보이는 것!

이 것은 삶의 평화, 삶의 자유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은밀한 곳을 아무리 찾으려해도, 산 깊숙한 곳, 울창한 숲 심지어 깊은 바다조차 사람들에게 안보이는 곳은 이 세상에서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은밀한 범죄는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단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형벌을 각오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한편, 이런 각오의 범죄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미 정보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무한하게 소통하며, 그 결과 인간들은 점차 선한마음이 발달하여서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형벌을 각오한자, 인생을 포기한자, 정보격차로 인해 소외된자...이들을 모두 구제하며 "정상인간"으로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감시망과 정보기술의 발달을 보고서, 한때는 파시즘적 독재를 꿈꾸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모두 감시행위를 하다가, 감시하려던 사람들과 쌍방향적 소통을 통해서 결국 많은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전달받고, 결국 그들도 독재할 생각을 접고는 그들도 역시 "정상인간"이 된다.
이렇기 때문에 결국 정보기술의 발달과 감시망의 확대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김진희>

2084년의 감시사회

2084년의 오세아니아 사회는 모든 계층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것이다. 절대권력 계층은 자신들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아 ‘예외’의 상황을 만들만한 일말의 가능성까지 없애고 싶어 하는데 고도로 발달한 정보사회에서는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국민의 치안을 명목으로 모든 장소의 감시망시스템을 설치함으로써 개인은 그 어디에서도 감시망에 대한 의식 없이 행동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핸드폰은 감시 시스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일정나이가 되면 당에서는 감시기능을 탑재한 핸드폰을 무상 지급하고 모든 장소에서 24시간 강제소지 할 것을 법으로 정하는데 이는 국민을 위한 것처럼 선전하지만 사실 개인에 대한 완전한 지배를 위한 것이다. 핸드폰은 한명의 사상경찰을 국민 개개인에게 붙힌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당이 국민들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영역은 여전히 생각이다. 하지만 당은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감시시스템에 익숙해진 터라 당에 반동적인 말이나 행동을 일삼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게 되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당의 목적대로 획일화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점점 무미건조함을 넘어서 기계와 다름없는 반사적이고 수동적인 상태가 되어간다.
하지만 스미스처럼 과거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당에 반동적인 생각을 가진 인물들이 자신들 내면의 생각을 당에 들키지 않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강구해 내려한다. -서유진-

죄수 감시 100년의 역사

1984년의 죄수감시는 텔레스크린을 이용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100년후인 2084년에는 텔레스크린과는 비교도 안될 감시기능이 나올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죄수가 말을 할 때마다 목에서 진동을 느끼게 한다던지, 움직일 때마다 몸에 전기가 흘러 찌릿찌릿한 느낌을 받는다던지 다소 잔인할지도 모르지만 더욱 과학적인 방법들이 나올 것 입니다. 그래서 2084년이라는 소설로 각색할 때, 수용소에 죄수들에게 목에 풀어지지 않는 전자충격목걸이를 채우고 팔과 다리에도 풀리지 않는 전자충격 팔찌,발찌를 채워서 100년전에 죄수가 움직일때마다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탈피하여 죄수 스스로가 다시 그 행동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수용소 내에 장교들이 있는데 100년후인 2084년엔 죄를 지은 죄수를 감시하는 데 괜한 노동력을 쓰지 않고 장교로봇을 만들어서 죄수이동 시스템, 죄수고문 시스템을 입력시켜서 죄수들을 고문하는 데 이용하는 걸로 각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환구>

무제

만약 내가 <1984년>을 <2084년>으로 개작한다면 계층사회에 대한 내용이 있는 부분을 추가로 덧붙이고 싶다. 1984년 산업사회와는 다르게 현대 사회는 정보사회이고 2084년이 되면 발전된 정보사회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급정보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상류층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좋은 정보를 얻기 위해 여러 방법을 이용함으로서 정보를 얻을 것이고, 하류층 사람들은 정보를 얻을만한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만큼 좋은 정보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정보의 수집방법으로 인해서 계층들 간 정보격차도 커질 것이고 여기에서 사람들의 경제적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여기에서 또한 계층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만약 소설을 개작한다면 이 부분을 추가로 넣고 싶다. <오세현>

2084년, 스미스는 죽지 않았다

현재 정보기술발달 상황으로 볼 때, 2084년에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기술이 발달할 것이다.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넘어선 정보화기기가 사회를 더 넓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개인을 옭아맨다. 핸드폰이나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을 감시하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이고 국가에는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이름의 부서가 24시간 내내 전 국민을 감시한다(가령, 평화부?). 하지만 1984년과 다른 형태로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자신이 감시 당하고있다는 것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태어날 때부터 개인마다 작은 칩이 내장되어 있어서 그 사람의 생각까지 지배할 수 있을 뿐.
그러나 그런 사회에도 스미스 같은 사람은 있다. 어느 날 문득 (칩의 오류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이런 사회에 의문을 가지며 개인의 자유를 원하는.. 2084년에도 역시 그런 자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종이에 반감을 표현하는 글 하나를 쓰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다. 컴퓨터 따위는 더 이상 자신만의 세상이 아니므로.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내가 쓰는 <2084년>에는 스미스 한사람의 생각이 사회를 바꾸는 씨앗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김지현>

1984년과 다른 2084년

1984년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개인감시가 철저하게 되어있다. 당원들은 거의 하루24시간을 정부의 감시 속에 살아간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1984년을 2084년으로 바꿔 쓸 수 있다면 감시 체제를 바꾸고 싶다. 1984에서 처럼 정부의 감시를 받게 된다면 2084년에는 그 감시에 대한 조작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텔레스크린을 통해 정부에서 보게 되는 화면을 개인이 다른 화면으로 전환 시켜 정부가 착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만약 1984년에서 처럼 사람들이 정부의 감시 속에서 살아간다면 2084년에는 그 감시를 피해 사람이 사람다운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게끔 만들고 싶다.

감정의 통제로 생각의 말살을...

조지 오웰의 [1984]에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송수신이 가능한 텔레스크린으로 감시한다. 구어(영어)를 기본으로 한 신어를 만들고, 해마다 단어의 수를 줄여감으로써 표현력과 생각의 영역마저 줄인다. 나는 생각의 영역이 줄어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2084년, 사람 들은 감시카메라, 미디어기기등으로 사생활을 감시당한다. 그리고 모든 행동의 이유가 되는 감정마저 통제한다. 모든 사람들에겐 하루에 한 알씩의 알약이 지급된다. 이 약은 사람의 감정을 완벽하게 없애고, 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하도록 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하루하루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삶을 살게되고, 희로애락마저 사라져버리는 기계가 되어간다. 그러나 주인공은 아내의 죽음이후 몰래 약투약을 하지 않게되고, 감정에 눈을 뜨게된다. 그리고 당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 그와 같은 사람들의 모임인 혁명단에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혁명단을 이끌어 당을 붕괴시키고 혁명에 성공한다.
저는 감정과 생각이라는 초점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는데, 이와 비슷한 영화가 한편있습니다. ‘이퀄리브리엄’이라는 작품입니다. 예전에 인상깊게 보았는데, 이번에 [1984]를 읽게되면서 상당부분 비슷해서 이퀄리브리엄의 모티브를 가져와봤습니다.

"기억 성형" 을 통한 반 기계적 인간.

미래를 상상하며 쓴 [1984]속에서 (당시에는 꿈에 가까웠던) 인간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술이 등장하지만 현재에 대부분 개발되어 구현되고 있다. 그렇다면 1984로부터 100년 후인 “2084”는 어떤 모습일까?

윈스턴 스미스는 “당이 과거의 기록을 고치고 삭제해도 사실은 기억 속에 존재 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2084]에선 기억세포의 변형, 소위 ‘기억성형’ 통해 기억도 송두리째 바꾸거나 없애버린다. 또한 뇌 속에 내장된 "칩"을 통해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당에 전송되어 영상으로 재생된다. 이렇게 되니 사각지대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24시간동안 감출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제 모든 태아는 철저한 유전자 획일화로 당의 사상에 규합한 인간, 즉 사상죄란 꿈조차 꿀 수 없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물론 사상범이란 단어조차 신어사전에서 삭제 될 것이다.

인간에 대한 구속은 [1984]에 비해 훨씬 강압적이지만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반항할 수 없는 절대 독재의 출현

1984년에서는 보통 텔레스크린이나 사상경찰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고 억압했지만 그것이 2084년으로 바뀐다면 보다 더 무서운 세상으로 도래하게 될것이다. 현재에도 보통 사람들은 휴대폰을 사용하지만 앞으로는 화상 통화와 같은 기술들이 더 진보하여 모든 핸드폰에 자신을 볼 수 있는 카메라가 장착되있을 것이다.(지금도 대부분 휴대폰들이 그러하지만)그러면 사람들이 휴대폰을 사용하는 동시에 모든사람들은 전화국과 정부로 통해 그들의 대화나 신상정보 그리고 GPS와 같은 기능으로 장소까지 쉽게 노출될 것이다. 100년 전에는 없던 휴대전화의 기능 또한 텔레스크린보다 더욱 큰 간섭의 작용을 할 것이다. 만약에 그런 독재와 당에 대해 반하는 세력들은 서로간의 소통과 대화가 더욱이 단절되고 어쩌면 그런 반동세력들은 혼자서 테러를 하거나 은밀한 장소에 지령을 담어두는 등 여러 행위를 할 수있다. 하지만 그것도 2084년도의 기술진보로 인해 무효화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실시간으로 그들을 감시하는 위성들, 그리고 땅에는 모든 선들이 한곳으로 이어져 있어 휴대폰이 없더라도 언제나 자신이 감시당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있을 것이다. 결국 이런 반동세력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기계적이고 어쩌면 1984년보다 더욱 억압적인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치명적인 유비쿼터스시대가 도래한다.

1984에서 세계는 이중사고, 사상경찰, 기억 말살로 대변되는 정치적인 전체주의와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 대변되는 고도의 기술주의가 병존하는 사회였지만 2084년은 정보 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한 치명적인 유비쿼터스 시대로 표현 하고 싶다. 겉으로는 정치적인 통제가 사라졌다고 한편으로 볼 수 있으나 이는 더욱 무서운 기술주의의 병폐로 나타나는데 국가가 각 개인을 감시하기도 하지만 기업이나 집단 그리고 생활 속 유비쿼터스화로 인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환경의 편리함 속에서 인류는 24시간 감시당하는 생활 속 리틀 브라더들이 비약적으로 많아진 것이다. 1984에서 당은 20세기 중반 소위 사유 재산 폐지를 실시 극소수인 상층부 당원들의 부를 축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2084년에는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 자본주의 적인 성격을 나타내지만 실제적으로는 사유재산을 축적한 지위 그리고 양의 따라 신분을 나누어 사유재산을 많이 소유한 사람일수록 더욱 세상으로부터 감시를 받는 사회가 온 것이다.

개인 감시의 시대가 온다

1984년보다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전체주의와 수많은 독재체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계속 성장했고 첨단기술로 인한 인간들의 사고영역은 넓어졌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비관적인 입장에서 구상해본 2084년은 국가의 감시체계가 아닌, 개인간의 감시와 그로 인한 사생활 침해에 관련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예를 들면, 첨단 장치를 이용하여 개인을 교묘히 감시하는 고지능 파파라치와 스토커들의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제일먼저 집안의 천장과 창틀, 그리고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첨단 감시장치를 떼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더 나아가면, 은밀한 감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개인은 철저한 보안을 요구할 것이고 과학자들은 그들의 요구에 맞춰 더욱 더 강력한 감시장치를 만들어, 감시의 악순환을 유발할 것이다. 또한 이 속에서 기계독점이나 감시 장치의 밀거래 현상도 나타나, 국가가 제지할 수 없는 지하 경제가 형성되는 내용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김잔듸>

수업 관련 영화 Enemy of the State 강추


학생 여러분, 아마도 여러분 대부분은 'Enemy of The State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라는 영화를 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보지 않았다면 이번 기회에 보도록 하세요. 매우 정보사회학적 영화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에일리언, 글래디에이터, 델마와 루이스, 블랙 호크 다운 등 문제작을 감독한 리들리 스콧의 동생인 토니 스콧이 감독한 영화입니다. 윌 스미스와 진해크만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을 벌입니다. GPS를 이용한 실시간 감시체제가 무엇인지를 실감있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2010년 3월 7일 일요일

아직 저자 등록을 못한 학생들에게

모든 학생들에게 다시 저자초청 메일을 보냈습니다. 가급적 빨리 등록을 마쳐주기 바랍니다. 그래야 첫 과제를 성공적으로 게시할 수 있습니다. 저자등록을 할 때는 꼭 실명으로 하기 바랍니다. 어차피 여러분은 과제를 실명으로 올려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불편을 줄여줄 것입니다. 혹시 저자 등록이 어려운 학생들은 내게 메일을 보내주기 바랍니다. 이 포스트에 코멘트를 달아도 좋습니다.

과제

내가 <2084>라는 SF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1984>에서 프롤(일반 대중들)들이 원하지 않고 감시를 당했던 부분을 그것이 하나의 쾌락이 되어 스스로 즐기게 된다고 바꾸겠다. 그리고 빅브러더 또한 대중들에 의해 직접 선출되어 지배하는 내용으로 바꾸고 싶다. 그에 따라 텔레스크린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스미스와 달리 텔레스크린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마치 벤담이 고안한 판옵티콘 처럼 그들 스스로가 감시를 원하기 때문에 아무도 권력에서 벗어나거나 대항할 생각 따위를 하지 않는 설정을 하겠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스미스 말고 줄리아를 실천적인 인물로 그려내고 싶다. 항상 영웅이 남성인 것을 새롭게 하고 싶어서 이기도 하고, 남성들은 물론이고 여성들에게도 신선한 경고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1984>의 결말은 결국 스미스와 줄리아 모두 빅브러더에게 굴복된 모습이지만 <2084>에서는 둘 모두 그런 위기상황에 놓이지만 역시 줄리아만은 결코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채로 희망을 주는 결말을 만들고 싶다. 사실 대중들이 감시받는 것을 쾌락으로 느낀다는 설정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풍자 소설로 그려내고 싶은 의도다. 그러한 무비판적이고 무상한 때가 오기 전에 모두가 분발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쪽으로 이끌어 내고 싶다. 얼마 전 미네르바 사건이 <1984>를 읽으면서 떠오르면서 몸서리쳐질 정도로 소름끼쳤다. 사실 아직 무엇부터 내딛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무언가 만약이라도 이러한 경우를 막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함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2010년 3월 5일 금요일

아이폰 사용 학생들에게

현재의 상태로 스마트폰에서 이 블로그에 접속해도 글을 게시하거나 코멘트를 다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상태에서 사용하면 좀 더 편리합니다. iTunes store에서 Blogwriter라는 응용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이용하면 훨씬 편리하게 블로깅을 할 수 있습니다. free인 lite버전을 다운받으면 됩니다. Blogpress라는 유료프로그램도 있으나 별로 낫지 않으니 그냥 Blogwriter lite를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한번 시도해 보길.

2010년 3월 1일 월요일

과제 1: 조지 오웰의 <1984년> 읽기

역서의 오역 한군데: 11쪽 밑에서 둘째 줄 "오세아니아 주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런던이라고…." --> "오세아니아의 주들 중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런던이라고…."


다음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1984년>을 읽기 바랍니다.


1) 주요 등장 인물들(스미스, 줄리아, 브라이언 등)은 어떤 사람인가?

2) 사건이 일어나는 시대와 장소는?

3) 이야기의 구조(plot)는?

4) 소설의 주제는?

5) 오세아니아라는 나라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6) 오세아니아를 생각해 볼 때, 조지 오웰은 스탈린 체제의 소련이나 북한 사회가 장래에 어떻게 되리라 예상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7) 오세아니아를 생각해 볼 때, 조지 오웰은 인간사회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되리라 우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세아니아가 오늘날의 정보사회에 대해 주는 교훈이 있다면?


다음 주에 과제는 두 가지를 수행해 주어야 합니다.

  1. 여러분이 <1984년>을 <2084년>이라는 SF소설로 개작한다면 어떤 부분을 어떻게 다시 쓰고 싶습니까? 500자 정도로 간략히 작성해 이 블로그에 게시하기 바랍니다. 반드시 실명으로 올려야 평가가 가능합니다. 마감은 3월 8일(월요일)입니다.
  2. 다른 학생의 과제에 대해 사용자 평가 네 등급 중 하나를 선택해 평가해 주십시오. 코멘트는 선택사항입니다. 다른 학생의 과제에 대해 좋은 의견이 있으면 코멘트로 올려 주세요. 성적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다른 학생들에게는 좋은 격려가 될 것입니다.

2010년 2월 28일 일요일

제1주 과목 소개

제1주 Introduction

1. 과목의 목표

- 정보사회, 특히 인터넷 문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능력 제고

- 창조적인 협업을 관리하고 통솔하는 능력 배양(ability to manage and lead creative collaborations)

* 지난 해까지의 강의와 다른 점: 지식사회에 대한 인식을 넘어 실제로 정보사회의 유능한 지식인(?)이 되는 훈련 제공

2. 수업 운영 방식

- 과목 블로그 사용 <정보기술과 사회>(itandsocietyhy.blogspot.com)

- 과제 제출과 댓글 달기

3. 성적 산정 방식

- 출석 20%

- 과제 30%

- 수업참여도 20%

- 기타 30% (quiz 등)

4. 수업 핵심 내용

1) 미래사회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전망

- 비관적 전망(dystopia): Orwell, Huxley

- 낙관적 전망(utopia): Charles Leadbeater

2) 지식생산의 새로운 패러다임: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

3) 미래를 보여주는 상반된 두 사례

- 소유권 기반 접근: Apple 방식

- 공유지 기반 접근: Google 방식

5. 교재

- 조지 오웰. <1984년> (박경서 역). 열린책들. 2008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이덕형 역). 문예출판사. 1998

- 찰스 리드비터.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이순희 역). 21세기북스. 2009.


- 과목 블로그에 회원 등록

- 과제의 사용자 등급평가를 가장 잘 받은 학생 1명을 매주 선정해 문화상품권을 수여합니다.


수업계획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