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5일은 조지 오웰의 탄생 100주년이었다. ‘1984년’에서 그는 고도로 감시적이고 전제적인 전체주의 국가를 묘사하였다. 스탈린주의를 혐오했던 오웰이 그러한 작품을 저술했다는 사실은 크게 놀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마치 그가 정보통신기술에 의한 감시사회의 출현을 예상했던 것처럼 치켜세움은 적절치 않다.
‘1984년’을 오웰의 미래사회에 대한 예언이라고 간주한다면 그의 예언은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빗나갔다.
첫째, 현대 복지국가는 ‘1984년’에서와 달리 개인을 억압하기 위해서 사생활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감시한다. 가공의 나라 오세아니아에서는 강제적 억압을 통해 감시가 행해지지만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의 동의와 초청에 의해 감시가 도입된다.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개인의 재산과 수입, 직업, 병력 등은 국가에 기꺼이 제공되고, 안전을 위해 주택가 구석구석에 CCTV를 설치하는 것에 동의한다. 또한 여러 행정기관들이 각종 개인정보를 공동 이용하여 민원서비스를 개선하도록 요구한다.
물론 선의의 감시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해킹에 의해 개인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될 수도 있고, D/B 관리자에 의해 개인정보가 오용되어 국민의 인권침해가 일어날 수도 있다.
둘째, 오웰은 ‘little sisters'의 출현을 예상하지 못했다. 오세아니아에서 감시자는 Big Brother에 의해 장악된 당(黨)과 국가이지만 오늘날은 기업과 개인-little sisters-도 국가에 못지않게 위협적인 감시자로 등장한다. 최근에는 Big Brother 보다 little sisters가 훨씬 위협적인 것 같다.
공장과 사무실에는 CCTV가 설치되고, 공장과 사무실 출입은 IC 신분증이나 생체인식을 이용해 통제된다. 신용카드사에는 개인의 구매정보가 쌓여 개인의 소비활동이 소상히 기록된다. 온라인 쇼핑몰은 회원의 인적 정보 뿐 아니라 사이트 이용 정보도 나날이 쌓여간다. 몰카(몰래 카메라)는 수많은 사람들을 본인도 모르게 포르노의 주인공으로 만들었으며, 유명인사들로부터 시작된 카메라폰의 공포가 빠르게 선남선녀들에게까지 퍼지고 있다.
셋째, 이차대전 직후 당시로서는 누구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오웰도 개인화된 디지털 정보기술이 보편적으로 이용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 결과 오세아니아에서 대중은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지만 오늘날에는 국민과 소비자가 국가와 기업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행정기관과 기업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물론이고 시민단체 사이트, 안티사이트 등의 게시판에는 국민과 소비자의 의견이 수시로 올라온다. 또한 서울시에서 시작된 민원처리온라인공개시스템은 중앙부처로 확산되고 있으며, 나아가 유엔을 통해 전세계에 보급될 예정이다. 요즈음 공무원들은 마치 투명한 벽으로 둘러싸인 사무실에서 일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미래사회에 대한 예언으로서 ‘1984년’의 우울한 전망이 지닌 한계를 확인하며 우리는 다소간 안도감을 느낀다. 오늘날 Big Brother에 의해서든 little sisters에 의해서든 프라이버시는 위기에 놓여 있지만, 사이버공간에서 전개되는 정보주체의 역동적인 활동을 보면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이 약속하는 온갖 편리의 향유에 프라이버시라는 제물은 필연적인가? 정보화에 앞서가는 나라들이 모두 이 문제를 풀기위해 고심 중이다. 지금까지 나온 최선의 해답은 정보주체를 역사의 현장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정보주체가 자기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보장을 해주어야 한다. 최근 NEIS 논쟁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그러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음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미래 예측은 늘 틀리게 마련이다. 누구라고 무덤 속에 편히 잠든 오웰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인간에 내재한 전체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고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는 점에서 오웰은 분명 시대를 앞서 갔고 ‘1984년’은 기념비적 저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공헌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굳이 그의 잘못을 확인함은 이제 와서 그의 업적에 생채기를 내려는 것이 아니라 정보사회의 진실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이다. (윤영민, 2003년 KISDI 웹사이트 전문가 칼럼 기고문)
저도 2084과제에서 Little brother란 표현을 적용했었는데 여기에서는 Little sister라 표현해 좀더 의미를 강조하려 했던것 같습니다. 정말현대사회에서 정보통신기술이 약속하는 온갖 편리의 향유에 프라이버시라는 제물은 필연적인가 라는 부분에서 많은 생각이드네요.
답글삭제현대사회에서는 초청에 의한 감시라는 측면을 수업시간을
답글삭제통해서 알았습니다. 하지만 응하고 싶지 않은 초청이 너
무나 많이 들어오고, 원하는 정보만 가려내기도 쉽지가
않은것 같습니다. 복지를 위한 개인정보 수집이라고는 하
지만, 이미 초청에 응한는 권한마저 그들에게 넘어가버렸
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