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집단지성은 퍼즐이다. 집단지성을 이루는 낱개의 지식들은 퍼즐의 조각과도 같다. 우리는 퍼즐을 끼워맞출때, 퍼즐 한 조각만으로는 그 퍼즐의 전체 윤곽을 알아볼 수 없다. 집단지성도 마찬가지이다. 집단지성은 하나의 조각으로 이루어 질 수 없다. 여러개의 조각이 모이고 그것이 합쳐져야 아름다운 퍼즐의 모습이 완성되듯이, 집단지성도 하나하나의 개별적 지식들이 모이고 그것들이 통합되어 방대하고도 집적적인 지식이 탄생하는 것이다.
한명의 지식은 한계가 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천재이거나 달변가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지식을 내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뭇가지하나는 잘 부러지는 것처럼 한사람의 지식은 여러사람이 공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많은 나뭇가지가 모인 지식은 잘 부러지지도 않고 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어낼 수가 있다.
이렇듯이 집단지성은 많은 사람이 같이 힘을 합쳐 만들어내는 공동체 지식이다. 하나하나는 보잘 것 없지만, 그것들이 모이고 줄을 맞추어 서게 됨으로써 체계적인 지식이 탄생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식의 참 모습이다.
2010년 6월 4일 금요일
집단지성이란
주체적인 생각을 가진 개인들이 이루어내는 지성적 생산활동의 총체
집단지성은 집단사고와 분명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데 집단사고는 개인의 '주체적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로서 지배적인 하나의 흐름이 집단 내 모든 사람들의 사고를 붙잡고 있는 것과 같다. 이와 비교해 집단지성은 함께 모이더라도 언제든 개개인의 주체적 사고 생산이 가능한 상태다. 서로가 상호작용을 하지만 사고의 지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터넷 내에서는 여러가지 집단지성의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는데 기본적 형태라 할 수 있는 블로그부터 시작하여 최근 국내에서 활발히 확산되고 있는 트위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띄고있다.
소셜미디어의 사회적영향
소셜미디어는 일상생활의 어떤부분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1) 오락 : 소셜미디어에 첨부되어있는 게임을 함께 해나갈 수 있고, 친구라면 그 사람의 게임순위까지 알수 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사생활을 올리거나 정보제공을 하는것 자체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2) 정보 : 누구나 정보제공자이다. 원하는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고, 알리고 싶은 정보를 쉽게 알릴 수 있다. 정보제공에 즐거움을 느끼고 정보제공을 통해 실질적인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3) 업무 : 소셜미디어로 업무에 대한 신속한 처리가 가능하다. 소셜미디어로는 일반사원과 회장도 '친구'가 될 수 있으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있는 기회가 생긴다. 또한 관리직의 입장으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 사람의 회사생활뿐만이아니라 사생활도 알 수 있으므로 인간적인 대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4) 교육 :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활동처럼, 과제를 올려서 교수님이 확인한다든가, 팀 과제 수행과정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쉽게 정보교류를 할 수 있다.
5) 인간관계 : 기존의 인간관계를 쉽게 관리할수 있고, 먼곳에 있는 사람들도 늘 함께인것처럼 할 수 있다. 평소 자주 연락을 안하던사람도 뭐하고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쉽게 맺을수 없는 정치인이나 스타, 다른나라사람들하고도 인맥을 형성할 수 있다.
1) 오락 : 소셜미디어에 첨부되어있는 게임을 함께 해나갈 수 있고, 친구라면 그 사람의 게임순위까지 알수 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사생활을 올리거나 정보제공을 하는것 자체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2) 정보 : 누구나 정보제공자이다. 원하는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고, 알리고 싶은 정보를 쉽게 알릴 수 있다. 정보제공에 즐거움을 느끼고 정보제공을 통해 실질적인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3) 업무 : 소셜미디어로 업무에 대한 신속한 처리가 가능하다. 소셜미디어로는 일반사원과 회장도 '친구'가 될 수 있으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있는 기회가 생긴다. 또한 관리직의 입장으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 사람의 회사생활뿐만이아니라 사생활도 알 수 있으므로 인간적인 대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4) 교육 :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활동처럼, 과제를 올려서 교수님이 확인한다든가, 팀 과제 수행과정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쉽게 정보교류를 할 수 있다.
5) 인간관계 : 기존의 인간관계를 쉽게 관리할수 있고, 먼곳에 있는 사람들도 늘 함께인것처럼 할 수 있다. 평소 자주 연락을 안하던사람도 뭐하고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쉽게 맺을수 없는 정치인이나 스타, 다른나라사람들하고도 인맥을 형성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social media)의 사회적 영향
소셜 미디어는 오락적인 측면이 강하다. 사람은 대화를 하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그 욕구를 해소해주는 해우소같인 존재다. 평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올림으로써 다른 사람의 답변을 기다리는 즐거움. 그리고 그 답변이 왔을때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다시 의견을 내놓는 과정을 통해 소통의 즐거움을 느낀다.
소셜 미디어는 인간관계를 넓게, 하지만 얕게 만들어 버렸다. 오프라인상에서 친구를 사귀기란 쉽지가 않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몇번의 만남을 통해 익숙함을 가져야 서로 친해진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상에서 친구사귀기란 클릭한번만으로 끝난다. 그 사람이 이때까지 만들어낸 컨텐츠를 구경하고 그 컨텐츠가 맘에 들면 친구맺기 한번으로 친구가 되어버린다. 친구맺기 당한(?)사람도 그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기쁨을 느낀다. 손쉽게 맺을 수 있는 친구관계로 우리는 수십 수백명의 친구를 한번에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친구를 맺었다고 해서 모두가 깊은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상세히 알고 친구를 맺는 것이 아닌 컨텐츠 혹은 겉모습만을 보고 친구를 맺기때문에 깊은 사이가 될 수 없다.
2010년 6월 3일 목요일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 미래.
조지오웰의 감시받는 세상의 구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선 더 쉬울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셜미디어가 발달됨에 따라 내가 감시할 수 있고 내가 감시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는 그 사람의 사생활과 정보를 모두 알게 됨으로써 감시자의 감시가 쉬워진다. 그것을 소셜미디어의 부정적인 면이라고 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 정보를 올리는 사람들은 그것을 숨길생각이 전혀 없다.
올리는 순간 누구에게나 개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오히려 더 알리려고하지 누군가의 감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더 알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집단지성이 점점더 발달하면서 미래사회에는 정보를 구경만 하지않는다.
스스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창조한다.
그리고 현재 세계 7대 난제인 것들도 집단지성이 발달함에 따라 다 풀려버리지 않을까?
소셜미디어가 발달됨에 따라 내가 감시할 수 있고 내가 감시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는 그 사람의 사생활과 정보를 모두 알게 됨으로써 감시자의 감시가 쉬워진다. 그것을 소셜미디어의 부정적인 면이라고 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 정보를 올리는 사람들은 그것을 숨길생각이 전혀 없다.
올리는 순간 누구에게나 개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오히려 더 알리려고하지 누군가의 감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더 알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집단지성이 점점더 발달하면서 미래사회에는 정보를 구경만 하지않는다.
스스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창조한다.
그리고 현재 세계 7대 난제인 것들도 집단지성이 발달함에 따라 다 풀려버리지 않을까?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 미래
조지 오웰의 미래는 그의 저서 1984년에서 볼수 있듯이 감시와 통제를 통해 쾌락을 억제하는 참으로 암담한 미래였다. 올더스 헉슬리의 미래는 너무 쾌락을 중시하여 인간의 인간다운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따라서 나는 이들의 주장과는 다른 미래를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려 내고 싶다. 소셜미디어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오게 되면서 사람들의 의사소통방식이 조금 더 업그레이드 된다. 키보드로 치지 않아도 소통이 가능한 소셜 미디어의 어플리케이션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누구의 감시와 통제도 없다. 다만 개인이 개인을 컨트롤 해야 하는 것이다. 집단지성이 올바르게 실현되려면 개인의 컨트롤 능력은 무조건 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집단지성의 발전과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으로 인해 우리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능동적인 소통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 미래
1984와 멋진신세계.
모두 훗날의 미래를 인간이 발전시킨 과학기술이 인간을 통제한다는 가정하에 예견하고있다. 어느부분정도는 나도 이러한 미래상에 대해서 동의를 한다. 지금(물론 위 소설에서 봤을때 미래)도 과학기술로 인해 부작용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가령 환경문제라던지 인간복제, 무기의 발달로 인한 살상의 위험등 많은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제 과학은 집단지성을 만나 점점 만인에게 공감을 얻고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발전을 한다. 과거 과학이 소수의 과학자들로 인해 이론이 정립되고, 발견이 행해졌다면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인간은 물론 지구의 모든 것에 이로운 것으로 발전해 간다. 수 많은 사람의 의견들은 각기 다르다. 그 의견들을 절충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면서 우리는 최적의 답안을 찾게되는 것이다.
미디어의 홍수
우리는 지금 폭우처럼 쏟아지는 미디어를 맞으며 살고 있다. 쉴새없이 떠드는 TV,라디오,신문 등...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정보를 넘치다못해 흐르고있다. 이러한 미디어는 앞으로 더 넘칠 것이라 생각한다. 제작자들이나 기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컨텐츠들이 이제는 각 개인들에 의해서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한명의 개인이 만든 컨텐츠의 퀄리티가 다른 제작자들이 만든 것 못지않게 높은 것도 많아졌다. 우리는 이러한 컨텐츠를 선택해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일반 언론에서 다루지 못했던 주제를 다룰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러한 컨텐츠들은 우리의 지적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본다. 이제는 소셜미디어의 시대인것이다.
모두 훗날의 미래를 인간이 발전시킨 과학기술이 인간을 통제한다는 가정하에 예견하고있다. 어느부분정도는 나도 이러한 미래상에 대해서 동의를 한다. 지금(물론 위 소설에서 봤을때 미래)도 과학기술로 인해 부작용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가령 환경문제라던지 인간복제, 무기의 발달로 인한 살상의 위험등 많은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제 과학은 집단지성을 만나 점점 만인에게 공감을 얻고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발전을 한다. 과거 과학이 소수의 과학자들로 인해 이론이 정립되고, 발견이 행해졌다면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인간은 물론 지구의 모든 것에 이로운 것으로 발전해 간다. 수 많은 사람의 의견들은 각기 다르다. 그 의견들을 절충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면서 우리는 최적의 답안을 찾게되는 것이다.
미디어의 홍수
우리는 지금 폭우처럼 쏟아지는 미디어를 맞으며 살고 있다. 쉴새없이 떠드는 TV,라디오,신문 등...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정보를 넘치다못해 흐르고있다. 이러한 미디어는 앞으로 더 넘칠 것이라 생각한다. 제작자들이나 기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컨텐츠들이 이제는 각 개인들에 의해서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한명의 개인이 만든 컨텐츠의 퀄리티가 다른 제작자들이 만든 것 못지않게 높은 것도 많아졌다. 우리는 이러한 컨텐츠를 선택해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일반 언론에서 다루지 못했던 주제를 다룰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러한 컨텐츠들은 우리의 지적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본다. 이제는 소셜미디어의 시대인것이다.
집단지성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본 미래
조지 오웰은 '1984'에서 기술의 발달을 통해 인간을 감시하고 인간이 타락하는 모습을,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쾌락에 빠져서 중요한 것들을 잃어 버리고 타락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둘다 기술의 발전과 미래에 관하여 부정적이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의 미래 예견은 너무도 많이 빗나갔다. 우선 조지 오웰이 말한 감시를 통해 자유를 억압하는 현상은 일어날 필요조차 없게 되어가고 있따. 사람들은 오히려 스스로 자신이 가진것을 공유하고 자신을 사회의 내비치고 있다. 물론 헉슬리의 주장처럼 쾌락에 빠지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기술의 발달을 통해 서로 멀어지기보다는 서로 가까워지고 단순한 쾌락보다는 지적 욕구를 채우는데 더 열중했다.
내가 생각했을때 위의 두 사람은 사람들의 협업을 너무 무시했다. 앞으로의 미래에는 협업을 통해 더욱더 발전하는 사회가 될것이다.
내가 생각했을때 위의 두 사람은 사람들의 협업을 너무 무시했다. 앞으로의 미래에는 협업을 통해 더욱더 발전하는 사회가 될것이다.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 미래
조지오웰이 생각했던 미래는 감시와 통제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하지만 조지오웰의 예견은 어긋났다. 고도로 발달된 사회적 네트워크와 소셜 미디어 속에서도 대중은 무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라인 네트워크는 감시와 통제의 수단이 아닌 정보를 얻어가고 공유하는 지식의 장이다. 이런점에서 내가 생각한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 미래는 누구나 지식을 평등하게 가질 권리, 그리고 공유 할 여건이 갖춰진 곳에서 살아갈 것 같다.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 미래
멋진 신세계는 도래할 것인가
우리가 생각한다
대부분의 미래 소설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은 통제와 감시에 기반한 파시즘적 독재사회이다. 하나의 사상이 전체 사회를 지배하고 다른 생각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가 정말 도래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바로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의 발달이다. 집단지성은 한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가 의견을 모을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독재자(dictator, 혼자 말하는 사람)가 존재할 수 없는 방식이다. 하나의 생각은 없다 다른 생각들이 있을 뿐이다. 소셜 미디어의 존재는 내가 보는 미래를 좀더 밝게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소수 Mass Media가 사회를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시민들은 다양한 창구에서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디스토피아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올때 비로소 불가능해지리라 생각된다. 말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니까.
우리가 생각한다
대부분의 미래 소설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은 통제와 감시에 기반한 파시즘적 독재사회이다. 하나의 사상이 전체 사회를 지배하고 다른 생각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가 정말 도래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바로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의 발달이다. 집단지성은 한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가 의견을 모을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독재자(dictator, 혼자 말하는 사람)가 존재할 수 없는 방식이다. 하나의 생각은 없다 다른 생각들이 있을 뿐이다. 소셜 미디어의 존재는 내가 보는 미래를 좀더 밝게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소수 Mass Media가 사회를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시민들은 다양한 창구에서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디스토피아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올때 비로소 불가능해지리라 생각된다. 말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니까.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본 미래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를 비판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를 써봐라!!
감시, 통제, 쾌락
조지 오웰의 <1984>는 기계를 통한 감시로 모든 사람들을 제어했다. 또한 <멋진신세계> 역시 사람이 사람을 감시하였다. 하지만 사람이나 기계가 사람을 감시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감시가 심하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을 제어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도 아마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내새워 못하게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 두 작가를 비판하고 싶다. 또한 통제는
열심히 생각해서 썼지만 교수님께서 마무리를 하시라고 하셨다. ㅠㅠ
감시, 통제, 쾌락
조지 오웰의 <1984>는 기계를 통한 감시로 모든 사람들을 제어했다. 또한 <멋진신세계> 역시 사람이 사람을 감시하였다. 하지만 사람이나 기계가 사람을 감시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감시가 심하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을 제어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도 아마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내새워 못하게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 두 작가를 비판하고 싶다. 또한 통제는
열심히 생각해서 썼지만 교수님께서 마무리를 하시라고 하셨다. ㅠㅠ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본 미래
조지오웰 <1984> 감시와 통제
올더스혁슬리 <멋진신세계> 쾌락을 탐닉하는 삶
조지오웰이 생각했던 1984와 올더스혁슬리에 멋진신세계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미래관이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미래관에서 부정적인 미래관 자체를 부정하고 싶다.
미래는 더 좋아질것이다. 내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에는 1984와 멋진신세계에서 존재하는 군중아닌 공중으로 존재하는 개개인이 되는 사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이상 군중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군중에서 벗어나고 있다. 예를들어 우리는 구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일방적인 기사를 읽게되고 전달받게 되면 일차적으로 이것을 적어도 다른 구미디어와 비교했고 그들간의 차이 (예 조선일보와 한겨례 논평차이)를 비교했다. 여기서도 우리는 군중이 되기쉬웠다 물론 사설에서 이들차이는 크다고 얘기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기에 집중하고 이것을 읽는이로 하여금 생각하는 기회보다 정보자체를 익히게 하는 대에 몰두한다. 하지만 우리는 더이상 구미디어를 보더라도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인터넷을 이용해 자신이 사용하는 SNS를 통해 더많은의견을 찾아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이를통해 우리는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쪽이 생각하는데로 군중이 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사용하는 공중이 되는 것이다. 공중이 된 우리는 더이상 1984와 같은 감시와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것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우리에게 작동할지 알고 있으며 멋진신세계에 '소마'와 같은 쾌락을 원하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든 SNS의 소마 속에서 쾌락을 느낀다 할 수 있다.!
올더스혁슬리 <멋진신세계> 쾌락을 탐닉하는 삶
조지오웰이 생각했던 1984와 올더스혁슬리에 멋진신세계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미래관이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미래관에서 부정적인 미래관 자체를 부정하고 싶다.
미래는 더 좋아질것이다. 내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에는 1984와 멋진신세계에서 존재하는 군중아닌 공중으로 존재하는 개개인이 되는 사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이상 군중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군중에서 벗어나고 있다. 예를들어 우리는 구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일방적인 기사를 읽게되고 전달받게 되면 일차적으로 이것을 적어도 다른 구미디어와 비교했고 그들간의 차이 (예 조선일보와 한겨례 논평차이)를 비교했다. 여기서도 우리는 군중이 되기쉬웠다 물론 사설에서 이들차이는 크다고 얘기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기에 집중하고 이것을 읽는이로 하여금 생각하는 기회보다 정보자체를 익히게 하는 대에 몰두한다. 하지만 우리는 더이상 구미디어를 보더라도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인터넷을 이용해 자신이 사용하는 SNS를 통해 더많은의견을 찾아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이를통해 우리는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쪽이 생각하는데로 군중이 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사용하는 공중이 되는 것이다. 공중이 된 우리는 더이상 1984와 같은 감시와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것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우리에게 작동할지 알고 있으며 멋진신세계에 '소마'와 같은 쾌락을 원하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든 SNS의 소마 속에서 쾌락을 느낀다 할 수 있다.!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본 미래?
오웰과 헉슬리를 비판과 내가 생각하는 미래.
감시 통제 쾌락.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가 가져다준 미래사회에서의 모습은 현재보다 더빨리, 더 쉽게, 더 많을 것을 얻게 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의 어두운쪽의 모습도 많이 떠오르고 있다.
1984에서 본 미래사회의 모습에서는 '감시'라는 모습을 통해 암울한 형상을 그려내고 있다. 기계가 인간을 감시하는 것이 정보시대에서 어느 정도는 꼭 필요한 모습이다. 하지만 오웰이 기본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은 불신을 바탕으로 하는 감시이다. 인간에대한 인간의 감시 모습과, 인간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성향 등이다. 하지만 집단지성의 힘은 미래사회에서 감시의 통제를 넘어 설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하는 집단지성이 구현 될 것이다. 감시를 통한 통제 또한 필요 없는 집단지성의 구현 될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흐름 속에 온라인속에서만 숨을 쉬는 개인이 발생할 수 도 있다. 웹상에서만 웃고, 쾌락을 즐기는 사람이 등장 할 수 있다. 이것은 현대사회에 이미 등장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쾌락중심의 사회! 멋진신세계 속 소마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을 단순히 쾌락의 도구로만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
미래사회는 소셜 미디어속 집단지성을 통하여, 감시가 필요없고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등장 할 것이다.
감시 통제 쾌락.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가 가져다준 미래사회에서의 모습은 현재보다 더빨리, 더 쉽게, 더 많을 것을 얻게 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의 어두운쪽의 모습도 많이 떠오르고 있다.
1984에서 본 미래사회의 모습에서는 '감시'라는 모습을 통해 암울한 형상을 그려내고 있다. 기계가 인간을 감시하는 것이 정보시대에서 어느 정도는 꼭 필요한 모습이다. 하지만 오웰이 기본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은 불신을 바탕으로 하는 감시이다. 인간에대한 인간의 감시 모습과, 인간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성향 등이다. 하지만 집단지성의 힘은 미래사회에서 감시의 통제를 넘어 설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하는 집단지성이 구현 될 것이다. 감시를 통한 통제 또한 필요 없는 집단지성의 구현 될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흐름 속에 온라인속에서만 숨을 쉬는 개인이 발생할 수 도 있다. 웹상에서만 웃고, 쾌락을 즐기는 사람이 등장 할 수 있다. 이것은 현대사회에 이미 등장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쾌락중심의 사회! 멋진신세계 속 소마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을 단순히 쾌락의 도구로만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
미래사회는 소셜 미디어속 집단지성을 통하여, 감시가 필요없고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등장 할 것이다.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 미래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 미래
조지오웰의 '1984년'은 개개인의 힘을 너무 무시하였다. 인터넷의 힘을 정부가 통제하지 못할 것이며 사람들 사이에 서로 하는 지성의 힘을 너무나도 무시하였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에부터 알고싶어하는 욕구가 있기때문에 책에서 나온 내용처럼 동물처럼 행동하진 않을 것이다. 지식을 더 알고 싶어하는 자신의 글을 쓰고싶어하는 주인공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행할것 이고 인터넷과 같은 하나의 소통의 창구속에서 사람들은 지식을 얻게되고 억압적인 정부는 무너질 것이다.
'멋진신세계'에서도마찬가지로 사람들사이의 정보공유와 지단지성의 힘을 간과하고 있다. 위의 1984년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그저 하나의 동물로서(여기서는 쾌락만 추구하는 사람) 여기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블로그나 인터넷과 같은 매체를 통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할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막을 수 없다. 쾌락 후에 남는 허탈감과 씁쓸함은 이 힘을 더욱 더 크게 할 것이다.
미래사회의 모습은 정보공유와 집단지성의 힘이 우리도 알 수 없게 꼭 숨쉬는 공기처럼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지식은 매일매일 매 순간 나타날 것이며 이것은 미래사회의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할 것이라고 본다. 정부의 탄압이나 규제 그리고 비민주적인 통치는 바로바로 시민들이 알 수 있게될 것이다. 정보는 공산화될 것이고 무한히 증가할 것이다. 사회는 민주적이고 사회 속 정보는 넘쳐날 것이다.
조지오웰의 '1984년'은 개개인의 힘을 너무 무시하였다. 인터넷의 힘을 정부가 통제하지 못할 것이며 사람들 사이에 서로 하는 지성의 힘을 너무나도 무시하였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에부터 알고싶어하는 욕구가 있기때문에 책에서 나온 내용처럼 동물처럼 행동하진 않을 것이다. 지식을 더 알고 싶어하는 자신의 글을 쓰고싶어하는 주인공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행할것 이고 인터넷과 같은 하나의 소통의 창구속에서 사람들은 지식을 얻게되고 억압적인 정부는 무너질 것이다.
'멋진신세계'에서도마찬가지로 사람들사이의 정보공유와 지단지성의 힘을 간과하고 있다. 위의 1984년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그저 하나의 동물로서(여기서는 쾌락만 추구하는 사람) 여기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블로그나 인터넷과 같은 매체를 통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할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막을 수 없다. 쾌락 후에 남는 허탈감과 씁쓸함은 이 힘을 더욱 더 크게 할 것이다.
미래사회의 모습은 정보공유와 집단지성의 힘이 우리도 알 수 없게 꼭 숨쉬는 공기처럼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지식은 매일매일 매 순간 나타날 것이며 이것은 미래사회의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할 것이라고 본다. 정부의 탄압이나 규제 그리고 비민주적인 통치는 바로바로 시민들이 알 수 있게될 것이다. 정보는 공산화될 것이고 무한히 증가할 것이다. 사회는 민주적이고 사회 속 정보는 넘쳐날 것이다.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 미래!
조지오웰의 1984년에서는 감시와 통제가 주를 이루는 미래상이 나온다. 이제껏 우리사회는 군부독재와 뒤늦은 민주화를 통해 감시사회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가 바뀌어 그런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감시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와 여러 새 매체를 통해 사람들은 웹을 통해 서로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또한 네티즌 하나하나도 그 감시를 인식하고 가식적인 행동을 하게되고 다른 사람들은 익명성을 통해 오히려 폭로하고 비방하는 등 여러 형태의 대화가 이루어 지고 있다. 조지오웰이 생각한 텔레스크린이 현대에는 인터넷과 여러 첨단 장비들이 그것을 대신한다. 하지만 감시에 걸린다해도 목숨은 잃는 사회가 오진 않겠죠?
두번째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쾌락에 눈먼 사람들과 정작 소중한 가족이나 그런 여러 개념들이 아예 묵살되고 무감각한 사회가 보여진다. 지금 사회에도 인간복제나 그러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적이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하지만 그것들이 이루어지기전에 사람들은 온라인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그에대한 논의를 할 것이고 그로 ㅇ린해 발생하는 집단 지성을 통해 어떤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는 모르지만 무튼 결정될 것이며 그것이 아마도 그시대에는 보다 더 정확하고 지혜로운 사고가 될 것이다. 멋진 신세계처럼 계층이 나눠지고 구분된다면 그건아마도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양에 따라 결정될 것 같기도 하다.
두번째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쾌락에 눈먼 사람들과 정작 소중한 가족이나 그런 여러 개념들이 아예 묵살되고 무감각한 사회가 보여진다. 지금 사회에도 인간복제나 그러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적이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하지만 그것들이 이루어지기전에 사람들은 온라인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그에대한 논의를 할 것이고 그로 ㅇ린해 발생하는 집단 지성을 통해 어떤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는 모르지만 무튼 결정될 것이며 그것이 아마도 그시대에는 보다 더 정확하고 지혜로운 사고가 될 것이다. 멋진 신세계처럼 계층이 나눠지고 구분된다면 그건아마도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양에 따라 결정될 것 같기도 하다.
집단지성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본 미래
집단지성과 소셜 미디어를 보며 나는 조지오웰의 미래상과 올더스 헉슬리의 미래상에 이렇게 생각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에서의 미래는 삭막하고 사람들이 감시당하기 싫어해서 피해다니고 이를 통제하고, 감정을 억제하는 사회들이 나타났지만 미래의 사회에서는 그럴 것 같지 않다. 먼저, 국가기관에서 먼저 감시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소셜 미디어를 하나쯤은 갖고 있기 때문에 , 그리고 그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그 소셜 미디어에 올리기 때문에 감시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볼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고 그것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원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것들 중에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등을 표출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미래 사회에서는 감정을 억제하고 자신의 의견을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 할 것 같다.
올더스 헉슬리의 미래에서는 사람들은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해서 다른 중요한 것들은 놓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집단지성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사회의 중요한 이슈들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한 것들을 보면서 관심이 없고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주제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미래에서 처럼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만 하고 나머지는 쾌락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아닌,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는 인터넷을 통해, 또한 집단지성을 통해 다양한 사고를 스스로 할수 있게 될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에서의 미래는 삭막하고 사람들이 감시당하기 싫어해서 피해다니고 이를 통제하고, 감정을 억제하는 사회들이 나타났지만 미래의 사회에서는 그럴 것 같지 않다. 먼저, 국가기관에서 먼저 감시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소셜 미디어를 하나쯤은 갖고 있기 때문에 , 그리고 그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그 소셜 미디어에 올리기 때문에 감시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볼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고 그것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원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것들 중에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등을 표출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미래 사회에서는 감정을 억제하고 자신의 의견을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 할 것 같다.
올더스 헉슬리의 미래에서는 사람들은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해서 다른 중요한 것들은 놓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집단지성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사회의 중요한 이슈들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한 것들을 보면서 관심이 없고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주제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미래에서 처럼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만 하고 나머지는 쾌락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아닌,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는 인터넷을 통해, 또한 집단지성을 통해 다양한 사고를 스스로 할수 있게 될 것이다.
집단지성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본 미래
헉슬리와 오웰은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권력의 감시와 통제로 얼룩진 사회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하였으며
특히 헉슬리는 물질이 충분해 짐에 따라 오직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될 것 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 발달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정보의 독점을 해소할 수 있는 장치가 제공될 기회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권력의 감시는 설 자리가 적어지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지며,
쾌락주의 사회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통해서 쾌락적 요소가 충분히 많아질 수 있기 때문에 현실성이 있다.
그러나 인간들이 쾌락적 요소뿐만 아니라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고 스스로 자각을 할 수도 있으므로 쾌락주의를 통제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오웰과 헉슬리의 견해는 전쟁에 의한 안정심리가 원인이 되었으므로 그런 일을 막아낼 수 있다면 그런현상 역시 통제할 수 있다.
권력의 감시와 통제로 얼룩진 사회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하였으며
특히 헉슬리는 물질이 충분해 짐에 따라 오직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될 것 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 발달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정보의 독점을 해소할 수 있는 장치가 제공될 기회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권력의 감시는 설 자리가 적어지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지며,
쾌락주의 사회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통해서 쾌락적 요소가 충분히 많아질 수 있기 때문에 현실성이 있다.
그러나 인간들이 쾌락적 요소뿐만 아니라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고 스스로 자각을 할 수도 있으므로 쾌락주의를 통제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오웰과 헉슬리의 견해는 전쟁에 의한 안정심리가 원인이 되었으므로 그런 일을 막아낼 수 있다면 그런현상 역시 통제할 수 있다.
집단지성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본 미래
미래에는 인터넷 안에서 집단지성이 현재보다는 활성화되어 있을 것이고 소셜미디어도 다른 미디어들보다 더욱더 강력해진 미디어가 되어있을 것이다. 이렇게 두개가 발전한다면 모든 사람들은 정보도 차별없이 받게 될 것이고 계층 또한 분별이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전에 읽었었던 1984년과 멋진 신셰계는 미래에 대해 어두운 측면만 내세운 것 같았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은 미래사회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어두운 미래로 그려졌다.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나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소셜 미디어가 발전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줄도 알게 될텐데 왜 이렇게 미래를 어둡게 그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집단지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 미래
조지 오웰의 <1984년> - 감시,통제의 사회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 쾌락의 사회
조지 오웰, 올더스 헉슬리이 그들의 소설을 통해 지적한 것은 아주 흥미롭고 아주 의미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감시, 통제의 사회
쾌락의 사회
이 두 가지를 통해서 '내가 나로 존재할 권리'를 박탈했다. 사회가 개인을 통제했다. 물론 소설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변수가 있었다. 세계적인 전쟁같은 것들 말이다. 어쨌거나 사회를 그렇게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굉장히 세밀하게 미래 사회를 예측했고 어떤 것들은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아마도 '내가 나로 존재할 권리'를 박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웹이 집단지성을 가능하게 하고 더욱이 소셜미디어를 도구로 개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수도 없이 공유한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개인을 개인으로만 머무르게 했다. 사회적으로 고립시켰고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의 폐단, 익명성의 문제 등등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이슈였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물리적으로는 뿔뿔이 흩어져 있더라도 오히려 웹 상에서 집단지성을 발현하는 이상한 현상이 점점 눈에 보이고 있다. 이제는 가상 공간에 홀로 지내는 것보다 가상 공간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큰 이슈로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셜 미디어가 집단지성을 통해 개인이 개인으로 존재하면서도 집단적으로 큰 힘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 쾌락의 사회
조지 오웰, 올더스 헉슬리이 그들의 소설을 통해 지적한 것은 아주 흥미롭고 아주 의미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감시, 통제의 사회
쾌락의 사회
이 두 가지를 통해서 '내가 나로 존재할 권리'를 박탈했다. 사회가 개인을 통제했다. 물론 소설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변수가 있었다. 세계적인 전쟁같은 것들 말이다. 어쨌거나 사회를 그렇게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굉장히 세밀하게 미래 사회를 예측했고 어떤 것들은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아마도 '내가 나로 존재할 권리'를 박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웹이 집단지성을 가능하게 하고 더욱이 소셜미디어를 도구로 개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수도 없이 공유한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개인을 개인으로만 머무르게 했다. 사회적으로 고립시켰고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의 폐단, 익명성의 문제 등등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이슈였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물리적으로는 뿔뿔이 흩어져 있더라도 오히려 웹 상에서 집단지성을 발현하는 이상한 현상이 점점 눈에 보이고 있다. 이제는 가상 공간에 홀로 지내는 것보다 가상 공간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큰 이슈로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셜 미디어가 집단지성을 통해 개인이 개인으로 존재하면서도 집단적으로 큰 힘을 가질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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